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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는 소그룹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는 소그룹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계속해서 모이기를 힘쓰면서(히10:25) 주님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계명을 수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본분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어 제자를 삼는 일은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는 이를 반영하는 형태와 조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성도 전체가 모여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하면서 초월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대그룹 예배와 교회의 각 지체들이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섬기면서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소그룹 모임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대그룹모임의 예배와 소그룹 모임이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호보완적으로 존속되어져 왔다. 모임의 성격상 대그룹 예배는 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졌다면, 소그룹 모임은 이웃을 사랑하여 교제하고 나누는 일에 주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대그룹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조화를 이루어 가도록 한 것은 교회의 조직과 형태를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수리가 두 날개로 비상을 하듯이 교회는 이 두 모임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 비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소그룹 모임의 중요성이 대그룹 예배에 비해서 현저하게 약화된 것이다. 소그룹의 약화는 교회의 질적 하향 평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각 교회마다 등록한 교인들에 비해서 소그룹 모임에 실제적으로 참여한 교인들이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은 편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소그룹 모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인들의 빈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그냥 단편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소그룹 모임에 참여해야 하고, 참여하면 좋다는 식의 권면으로는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회에서의 소그룹 모임에 대한 본질적인 중요성과 분명한 인식을 심어 주어여 한다. 어떻게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시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지를 성경적인 원리를 살펴보고,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민수기를 통해 성경적인 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수기서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연단과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군대로 바뀐 변화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까지.
출애굽을 한 2-3백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황량하고 허허벌판인 광야에서 하루 이틀, 일이년이 아니라 40년 동안이나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이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민족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출애굽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애굽의 노예 출신에 불과했었다. 책임질 줄 모르고, 쉽게 포기하고, 쉽게 원망하고, 그저 배부르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오합지졸의 노예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40년의 광야생활 동안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노예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를 청산하고 단숨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놀라운 백성들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광야 40년간의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는 완전히 다른 민족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인류 민족으로서의 위용을 드러냈다. 하나님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광야에서 그 백성을 훈련시키신 후에 역사의 중앙 무대에 그들을 당당하게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훈련을 시키셨고, 그들을 어떻게 정비시키셨기에 이처럼 놀라운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었는가? 거기에 비해 오늘날의 교회가 양산해 내는 성도들은 얼마나 허약하고 무기력한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근본적으로 신앙생활을 재고 해 봐야만 한다.   

 노예의 습성이 가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숨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하나님의 군대요, 영적 요사들로 탈바꿈을 한 것은 하루아침에 그냥 쉽게 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20세 이상의 장년들 중에서는 오직 두 명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즉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허락받았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어야만 했다. 이로 보건데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믿음의 훈련과 연단의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너무나 쉽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신앙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어야만 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노예적인 사고방식과 습성을 벗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속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일을 철저하게 감당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폭발적인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어찌 쉽고 가벼울 수 있겠는가! 

신분과 소속을 분명히 하라. 
민수기 처음 몇 장에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장정만 6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비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數)를 파악하여 각 지파별로 배치하고 행진을 시킨다. 즉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정확한 소속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군대로서 준비시킨다. 하나님은 이 일을 치밀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오합지졸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완전한 조직을 갖추게 하셨고, 현대의 군대에 비해서 결코 무질서 하거나 혼란스러운 광경을 빗게 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들이 군대에 입대하면 보충대에서 먼저 신분을 파악하고 소속을 분명하게 한다. 즉 와야 할 사람이 왔는지, 혹시 영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온 것은 아닌지 먼저 개개인을 정확하게 파악을 한다.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오게 만들고, 부르지 않은 사람이 왔다면 아무리 자신이 원해도 입대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군대는 신분과 소속이 분명하다. 이것은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보다 국가의 부름과 직무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정비시킨 것을 통해 우리가 첫 번째 배워야 교훈이 있다면 분명한 신분과 소속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대부분 소그룹에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한 신분과 소속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과 소속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군대로 세워지기는 어렵다. 하나님께 소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들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교회의 소중함을 알 리가 없다. 교회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교회의 지체로서 소속하는 일에 무관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공동체는 무기력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소속의 의미와 신분의 영광스러움을 다시금 재교육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군대로 훈련하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부터 하나님의 군대로 정비하셨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최고의 군대를 조직하시고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대충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지극히 완전한 형식으로 배열이 되어 훈련을 시키셨다. 물론 무기를 들고 싸우는 군대가 아니라 믿음으로 영적 싸움을 싸우는 군대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군대 대형으로 편성하신 것이다. 교회가 만약 영적 군대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훈련에 중점을 두지 못할 것이다. 군대는 처음이 중요하다. 신병 훈련소에서 어떻게 훈련을 받느냐가 중요하듯이 교회에 처음 등록했을 때 새 가족반이나 새 신자반을 통해서 처음부터 분명하게 교육하는 것이 좋다. 처음에 영적 기초를 분명히 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몇 갑절 더 노력을 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좋은데 교회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한다. 교회는 언제나 문제가 많고 실망스럽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에 소속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또는 교회에 소속을 했지만 교회의 기관에, 소그룹에 소속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영적 군대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이 땅에서의 영적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소속이 불분명한 사람이 어떻게 의심과 두려움, 불신과 자기주장이 가득한 사람이 마귀와 투쟁을 할 수 있는 영적 전사로 설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비대하게 만들뿐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 잘못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교회의 평신도 리더들이 개인적으로만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가 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   

훈련된 평신도 리더를 세우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전해지도록 하셨지만 각 지파에 세운 지도자들을 통해 그 말씀이 다양하게 적용되도록 하셨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는 각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각 지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여건과 형편에 맞게 말씀을 적용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체적으로 공유되는 은혜와 축복을 누렸다. 모세 혼자서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다스릴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각 지파별로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상황과 여건에 맞게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며 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소그룹 리더들을 양육하는 문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영적 기초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회자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터놓고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목회자들 역시 평신도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훈련된 평신도가 소그룹의 리더로서 중간 역할을 감당해 주면 공동체에 엄청난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소그룹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소그룹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서 몇 가지 실천적인 방안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소그룹에 참여하는 데는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다. 처음부터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소그룹 모임이나 여러 훈련 프로그램에 갈급한 마음을 갖고 참석할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뜨뜨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을 소그룹모임에 동참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그룹에 동참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1. 관계를 진척시킬 이벤트를 가져라.  
   소그룹 모임은 마음을 나누는 모임이다. 그런데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쉬운 일만이 아니다. 그래서 자꾸 소그룹을 꺼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서로 간의 관계를 가로 막고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피상적인 만남이 아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깊고 진한 만남을 위한 이벤트를 가져보면 의외로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소그룹 모임에 아직 익숙하지 못하거나 아직 서먹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관계를 진척시킬 이벤트를 준비해 보라. 몇몇 부부가 함께 여행이나, 식사 모임, 작은 수련회를 통해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기회가 된다. 식사도 같이 하고, 사진도 함께 찍어 보고, 더불어 놀이도 하노라면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지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진다. 대화가 이뤄지면 소그룹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사람들도 색다른 분위기로 인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많다. 본인도 1박 2일의 관계 진척을 위한 이벤트를 통해 교회 지체 간에 있었던 거리감을 무너뜨리자 서로에 대한 친밀함이 높아졌고, 그 후로는 그 소그룹은 너무나 활성화되었다. 그런 형편이 되지 못하더라도 교회에서만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좀 더 생활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관계가 또 다르게 진척이 된다. 관계의 친척은 곧 바로 소그룹 활성화로 이어진다.

2. 끈끈한 인간관계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훌륭한 사람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덜 훌륭한 사람에게서 훨씬 더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한 순간에 관계가 끈끈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므로 지체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날들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분위기를 문화로 정착시켜 보라. 생일이라든지, 결혼기념일 등을 기회로 삼아 자주 축하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라. 주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리고 제자들도 상호간에 하는 많은 시간을 가졌다. 짧은 시간을 갖고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 함께 식사도 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훨씬 더 인간적인 만남이 깊어지게 된다. 친밀한 관계를 통해 영적 영향을 상호 주고 받게 된다.  
 
3. 아이스 브레이킹을 활용하다. 
  사람들은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고 마음껏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관계의 활성화가 일어난다. 마음껏 웃을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좋다. 요즘은 아이스 브레이킹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으므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보라.